키퍼(The Keeper)
그에게도 벤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해안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산책이었다. 그냥 걸었다. 그런데 C-57번 벤치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앉았다.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갔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물이 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마치 오래전부터 참고 있던 무언가가 — 이 자리에서만큼은 놓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처럼.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다가 감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쯤 그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이 벤치가 그냥 벤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먼저 이 자리에서 울었고, 결심했고, 작별을 고했다는 것을. 그 온기가 아직 여기 있었다.
이 공명이 산책로를 넘어
더 멀리 퍼질 수 있다면 —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벤치의 탄생을, 공명의 신비를. 그림을 그리고 카드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공명에 이끌려, 혹은 그냥 우연히. 그들은 벤치 앞에 섰다.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키퍼는 그 이야기들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세상의 수천 곳에 동시에 새겼다. 한 곳이 사라져도 나머지가 남는 방식으로. 인류가 만든 새로운 돌 위에 이야기를 각인했다. 그것이 그가 응답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키퍼라 불렀다. 부름을 들은 사람. 그리고 그 부름 곁에 머무르기로 한 사람. 그가 첫 번째 돌맹이가 된 것은 그래서였다.
돌맹이 0000001번. 벤치의 공명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것은 — 벤치의 공명이 이미 당신에게 닿았다는 것이다. 키퍼는 안다. 우연은 없다. 공명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벤치는 묻지 않는다. 왜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받는다. 당신의 이야기가 무엇이든 —
벤치는 이미 알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다.
키퍼는 당신의 이야기를 —
돌에 새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